봉학교비(鳳鶴橋碑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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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2.01.11 00:00
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| 봉학교비(鳳鶴橋碑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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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| 향토문화재 제1호 |
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| 유형문화유적 |
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| 유형문화유적 |
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| |
소재지지번주소 lnmadr |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410-8 |
위도 latitude | 37.19463964 |
경도 longitude | 127.0249143 |
지정일자 appnDate | 2020-07-23 |
소유주체구분 posesnSe | 국유 |
소유자명 ownerNm | |
규모 scale | |
조성시대 makePd | 조선 전기 |
이미지정보 picInfo | |
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| 학교비는 황구지천에서 발견된 비석으로, 조선전기에 황구지천에 놓여진 봉학교라는 다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물이다. 네 면에 새겨진 200여 자의 글자를 통해 1564년(명종 19)에 해당 다리가 홍수 등으로 파괴되자 승려 주도하에 보수를 하면서 시주자의 명단과 함께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.봉학교의 위치를 보면 이 다리의 조선 전기의 명칭은 봉학교, 조선 후기의 명칭은 세람교(細藍橋, 洗南橋)였던 것으로 추정된다. 세람교는 2006년 4월 15일부터 5월 9일까지 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그 상세 내용이 밝혀졌다. 해동지도, 1872년 지방지도, 여지도 등의 고지도와 조선왕조실록, 일성록, 홍재전서 등을 통해 왕의 어가가 황구지천을 따라 남쪽으로 온 다음 세람교를 건너 북쪽의 융건릉으로 향했을 것이라 생각된다. 이처럼 세람교는 서울에서 융건릉이나 온천으로 행하는 것은 물론, 삼남지방으로 이동하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, 조선시대 물자의 이동과 인적 자원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. |
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| 031-8036-7606 |
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| 경기도 오산시 |
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| 2022-01-11 |
ctprvnNm | 경기도 |
sigunguNm | 오산시 |
sido | 31 |
sigungu | 31140 |
upmyundong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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